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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기술의 역사

1)목판 인쇄

중국에서는 서기 220년경 암흑 시대를 거쳐 수나라가 멸망하고 당나라가 천하를 지배하게 되었다. 이 때 불교가 가장 뿌리 깊이 내리고 있었으며 이 불교가 인쇄술 발생을 촉진시킨 계기가 되었다.
목판인쇄는 대개 7세기 중엽부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740~50년에는 작은 불상, 경전, 지폐 등을 인쇄하였으며, 그 기술은 동서양으로 전파되었다. 현존 목판인쇄물로써 가장 오래된 것은 다음과 같다.

[세계 최고의 오래 된 현존 목판 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서기 751년 간행, 신라)

1967년 9월 16일 국보 제126호로 지정되었다. 두루마리 1축(軸)으로 너비 약 8㎝, 전체길이 약 620㎝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목판(木板)으로 인쇄된 이 경문은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의 해체 ․복원공사가 진행되던 1966년 10월 13일 탑신부(塔身部) 제2층에 안치된 사리함(舍利函) 속에서 발견된 것으로, 이때 석탑 내부에서 함께 발견된 총 28점의 일괄유물이 67년 9월 국보로 지정되었다. 이 경문은 한 폭(幅)에 55~63행, 한 행에 7~9자씩으로 되어 있으며, 상하(上下)는 단선(單線)이고, 필체는 힘찬 해서(楷書)로서 중국 육조시대(六朝時代), 특히 북위(北魏)의 서법(書法)을 연상하게 한다.
이 《다라니경》의 출간연대 상 ․하한(上下限)은 700년대 초에서 751년 사이로 추정하는데, 그 까닭은 당(唐)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가 집권한 15년 동안에만 주로 통용되고 그후에는 자취를 감춘 신제자(新制字) 4자(注[證] ․澍[地] ․全[授] ․葺[初])를 이 경문 속에서 발견할 수 있고, 또 최소한 석가탑의 건립연대인 751년을 그 하한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인경(印經)으로 알려진 일본의 《백만탑다라니경(百萬塔陀羅尼經)》(770년 인쇄)보다 20년이 앞서는 셈이고, 지질(紙質)이나 인경의 형태를 보더라도 중국에서 수입된 것이 아니라 신라에서 조판(雕板)되었음이 확실하므로, 한국 고인쇄문화(古印刷文化)의 높은 수준을 증명할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백만탑다라니경 (百萬塔陀羅尼經, 서기 770년 간행, 일본)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 서기 868년 간행, 중국)

1986년 10월 15일 보물 제877호로 지정되었다. 1축(軸)이며 권자본이다. 서울 김종규(金宗圭)가 소장하고 있다. 금강경을 주경(主經)으로 하고, 설법도(說法圖)․보공양진언(普供養眞言)․발원문(發願文)․반야심경(般若心經)․묘법연화심경(妙法蓮華心經) 등을 수록하였다. 권자본 형식으로 판각하고 34.5cm×32cm 크기의 전지(全紙) 71장에 찍어 권축(卷軸)과 표죽(竹)
없는 두루마리의 것이며, 지질은 자색닥종이[楮紙]이다.
권말(卷末) 간기에 의하면, 1357년(공민왕 6) 전주에서 우파새(優婆塞) 김저(金貯)가 입수한 책에 의거, 덕운사사문(德雲寺沙門)인 지선(志禪)과 조환(祖桓)이 간역(刊役)을 맡고, 성주(省珠)․법굉(法宏) 등의 각수(刻手)가 새겨 완성한 것이다.

[목판 인쇄본]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고려)

이 거대한 역사(役事)는 불교를 흥왕(興旺)시키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문화국으로서의 위력을 이웃나라에 선양하고, 불력(佛力)으로 국난을 타개함으로써 호국(護國)하겠다는 대발원(大發願)에서 이룩된 것이다.

이의 조조(雕造)는 오랜 시일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시행되었다. 제일 처음 조조된 것은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 또는 《초판고본대장경(初板古本大藏經)》이라고 하는데, 1011년(현종 2) 거란(契丹)의 내침을 계기로 시작되어 1087년(선종 4)까지 77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이 초장경(약칭)은 대구 부인사(符仁寺)에 도감(都監)을 두고 송(宋)의 개보판(開寶板) ․거란본(契丹本)과 종래부터 전해 내려오던 국내본(國內本) 등을 저본(底本)으로 하여 《대반야경(大般若經)》(600권) 《화엄경(華嚴經)》 《금광명경(金光明經)》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등 6,000여 권의 경판(經板)을 만들었다.
그 후 문종(文宗)의 제4왕자인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이 송나라에서 각종 장소 3,000여 권을 모아 가지고 돌아와, 1073년(문종 27)부터 1090년(선종 7)까지 이 교장(敎藏)과 불서(佛書) 모은 것을 엮어 이를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이라 하고 이 목록에 의하여 차례대로 인간(印刊)한 것을 《속장경(續藏經)》이라고 한다. 그 후로도 흩어져 있는 불서를 모아 간행하였는데, 그 일은 그가 죽기 2년 전인 1099년(숙종 4)까지 계속되어, 모두 1,010부 4,740여 권이 인간되었다.
제1차로 완성된 이 정장(正藏)은 그 경판이 부인사에 이관, 소장되어 있었으나, 1232년(고종 19) 몽골군의 침입으로 소실되었으며, 《초조대장경》은 일본 교토[京都]의 난젠사[南禪寺]에 1,715권이 남아 있고 《속대장경》은 순천 송광사(松廣寺)와 고려대학교 도서관 및 일본 나라[奈良]의 도다이사[東大寺], 나고야[名古屋]의 신후쿠사[眞福寺] 등에 각각 흩어져서 겨우 47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몽골군의 침입으로 서울을 강화도로 옮긴 고려는, 호국(護國)을 위한 부인사의 《대장경》이 소실되자, 이 외침을 물리치기 위하여 다시 대장경을 조조하여 불력의 가호를 빌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대장도감(大藏都監)을 새로이 설치하고, 1236년(고종 23)부터 1251년(고종 38)까지 재조(再雕)대장경을 완성시켰다. 이것은 처음 강화도성(江華都城) 서문(西門) 밖의 대장경 판당(板堂)에 수장되어 있었는데 후에 강화의 선원사(禪源寺)로 옮겨졌고, 그 후 조선 초기에 서울의 서대문 밖 지천사(支天寺)로 옮겼다가 다시 합천(陜川) 해인사(海印寺)로 옮겨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이 《재조대장경》은 구목록(舊目錄)의 천(天)~동함(洞函)에 이르기까지 639함(函)에 엮어져 부수는 1,547부(部), 6,547권(卷)이며, 추가목록의 동(洞)~무(務) 및 중복된 녹(祿)~무함(務函) 24함에 들어있는 15부, 231권(혹은 236권)을 합하면, 모두 663함 1,562부, 6,778권(혹은 6,783권)이며, 경판의 수는 8만 1258판이 되고, 이것이 안팎으로 새겨져서 16만여 쪽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이것을 세칭 《팔만대장경》이라고 한다.이 재조대장경은 초조대장경을 그대로 다시 조조한 것은 아니다. 그것을 저본으로 한 것은 사실이나, 송 ․거란본과도 대교(對校)하여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 고쳤고, 빠진 것은 그것을 보완하였다. 그리고 초장경 때에는 없었던 《송조신역경(宋朝新譯經)》과도 대교(對校) ․고감(考勘)하였고, 《개원록(開元錄)》 《속정원록(續貞元錄)》 등의 불서목(佛書目)도 참고하여 본문을 다양하게 보완하였다. 이런 노력 끝에 이루어진 이 대장경은, 중국 북송(北宋)의 《개보칙판대장경(開寶勅版大藏經)》 이후 각종 《대장경》이 잇달아 조조되었지만, 그 어느 것보다도 본문이 충실하며 오탈(誤脫)이 적다는 것이, 국내외 학자들의 정평(定評)이다. 그래서 일본에서도 이것을 저본으로 하여 《축쇄장경(縮刷藏經)》을 만들어내었고, 잇달아 중국에서도 청나라 말에 《빈가정사장판(頻伽精舍藏板)》을 내놓았다.

《대장경》의 조조는 고려가 가장 어려웠던 국난의 시기에 초조판부터 헤아려 실로 240년이라는 장구한 시일을 통하여 이룩한 거국적 대사업으로, 대장경의 인쇄를 둘러싸고 경쟁하였던 송 ․거란에 대해 문화국으로서의 위신을 드높였을 뿐 아니라, 인쇄술과 출판술의 발전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2)찰흙활자

중국 송나라 필승은 1041~1048년에 걸쳐 찰흙에 문자를 새겨 이것을 구워서 활자를 만들었다. 조판할 때는 철판에 밀랍과 송진, 종이 가루를 혼합한 것을 깔고 여기에 활자를 배열하여 한 판이 되면 아래서 열을 가해 밀랍이 녹으면 위에서 평면의 판자로 눌러서 지면을 고르게 하였다.
이것을 냉각, 고정시킨 다음, 여기에 잉크를 묻혀 종이를 놓고 문질러 인쇄하였다.
인쇄가 끝나면 다시 철판에 열을 가해서 활자를 빼내어 찾기 쉽도록 정리하여 나무 상자에 보관하였다. 나무 활자로 못한 이유는 나무에 결이 있고 물을 흡수하면 높이가 달라지고 판면이 평면으로 되지 않으며, 한번 접착제로 부착시키면 떨어지지 않는 결함이 있었다 한다.

3)나무활자

필승의 찰흙활자를 발명한 때부터 약 270년이 지난 1312년에 중국 원나라의 왕정이 나무활자를 만들어 자신이 쓴 농업에 관한 책을 22권 간행하였다. 나무활자를 만들 때에는 목판에 문자를 새겨 그것을 가느다란 톱으로 한 자씩 잘라내어 작은 칼로 4면을깨끗이 깍아서 크기와 높이를 일정하게 하였다

4)동활자

1234년(고려 고종 21년) 부터 41년 사이에 동활자를 사용하여 상정고금예문 50권을 인쇄하였다. 이규보의 문집인 동국 이상국집에 이책을 고종 21년 금속활자로 인쇄하다라 기록이 되어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최초로 금속활자를 사용하였던 것이다. 1400년경 조선시대 태종은 전용주자소를 설치하여 1403년 서울남산의 왕립주자소에서 조선최초의 주조활자인 계미자(癸未字)를 선보였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계미자는 경자자, 초주갑인자, 재주갑인자를 거치면서 보다 아름다운 필서로 다듬어졌으며, 한글이 창제된 세종조에는 국한문 혼용의 석보상절(釋譜詳節)과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이 간행되기에 이른다.
5)금속활자

1445년 구텐베르크가 납활자를 발명하여 포도 짜는 목제 압착기를 개량하여 인쇄기로 사용하였다. 또 그는 활자의 납에 주석과 안티몬을 넣어 납활자를 성공적으로 만들어 내었다. 한편, 1234년(고려 고종 21년)부터 41년 사이에 동활자를 사용하여 상정고금예문 50권을 인쇄하였다. 이규보의 문집인 동국 이상국집에 이책을 고종 21년 금속활자로 인쇄하다라 기록이 되어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최초로 금속활자를 사용하였던 것이다. 다만 당시 유물이 전해지지 못한 것이 애석한 일이다 고려 우왕 3년 (377년) 에 충주 교외에 흥덕사에서 주자 간행한 책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현존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심체요철이 현재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5. 세계의 인쇄역사처음에는 모든 문서가 사람의 손에 의해 일일이 필사되었는데, 인쇄술은 그러한 문서를 용이하게 복제하는 수단으로서 발명되었다. 인쇄술이 어느 때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기원을 단정할 수는 없으나, 이미 고대에 발명되어 많이 이용되고 있던 인장의 압인(押印)․날인(捺印)이나 석각비문(石刻碑文)의 탁인(拓印)등이 그 발명의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인쇄술에서 없어서는 안 될 종이는 105년에 중국의 채윤(蔡倫)이 발명하였다. 최초의 인쇄방법은 판재(板材)에 문자나 그림을 새기고 그 표면에 잉크(먹물 등)를 묻혀 그 위에 종이를 놓고 문질러서 찍어내는 목판인쇄로서 중국에서는 이미 당(唐)나라 때에 실용되어 작은 불상․경전․지폐 등을 인쇄하였으며, 그 기술은 점차 다른 나라로 전파되었다. 한국의 목판인쇄도 7세기경인 삼국시대 말경부터 통일신라시대 초에 걸쳐 실용되었으리라고 짐작된다. 현재 남아 있는 인쇄물로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목판인쇄물인 불국사 석가탑 사리함 속에서 1966년에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인데, 이것은 751년(통일신라 경덕왕 10) 이전의 목판인쇄물로 보고 있다. 그 밖에 일본에서 770년에 인쇄된 《햐쿠만토다라니경[百萬塔陀羅尼經]》과 중국에서 868년에 인쇄된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과 같은 인쇄물이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는 오래 된 인쇄물이다. 고려시대에 각판되어 해인사에 보존되어 있는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판목도 목판인쇄에 쓰이던 것으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목판인쇄술은 유럽에도 전해져서 카드나 성화 등을 인쇄하는 데 많이 이용되었으나, 15세기 중엽에 활판인쇄가 발명되면서 미술 분야에서 주로 이용하게 되었다. 1423년의 《성크리스토퍼의 도하(渡河)》와 1560년의 《알브레히트 뒤러》 등은 목판인쇄물의 걸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목판인쇄물에서 판화를 볼 수 있는데, 1434년의 《삼각행실도(三綱行實圖)》, 86년의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등의 삽화가 알려져 있다.
금속활자는 한국에서 일찍부터 발달하여, 고려시대 1234년에 동활자(銅活字)를 사용해서 《고금상정예문(古今詳定禮文)》 50권을 인쇄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1403년(태종 3)부터 수년 간에 걸쳐 동활자 수십만 개를 주조하여 서적 인쇄에 사용하였는데, 이것이 세계적으로 알려진 계미자(癸未字)이다. 1945년 독일의 구텐베르크는 납활자의 주조에 성공, 이것을 조판해서 포도압착기를 응용하여 만든 평압식(平壓式)인쇄기로 성서를 인쇄하였다.
이것은 인쇄기를 이용한 최초의 볼록판인쇄로서 수년 사이에 유럽 각지에 퍼졌다. 60년경 이탈리아의 피너게라는 금속판의 표면을 부식시켜 오목판을 만들어서 오목판인쇄를 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였으며, 1798년에는 독일의 A.제네펠더가 자기 고장에서 산출되는 대리석(석회석의 일종)에 인쇄잉크(쇠기름을 원료로 한 것)로 글씨를 쓴 다음 질산으로 대리석판을 부식시켜 볼록판을 만들어서 악보 등을 인쇄하는 동안, 이 대리석이 다공질(多孔質)
로서 수분을 오래 지녀 지방성인 인쇄 잉크를 받지 않는 점에 착안해서 석판인쇄의 원리를 발견하였다. 이것이 평판인쇄의 시초가 되었다.
이리하여 18세기 말까지 볼록판(목판․활판)․오목판(조각 오목판․에칭)․평판(석판) 등 세 가지의 기본적 인쇄방법이 고안되었다. 19세기가 되면서 프랑스의 니에프스와 다게르에 의해 사진술이 발명되고, 1839년 영국의 폰턴에 의해서 중크롬산 젤라틴액의 감광성 내산물(感光性耐酸物)이 발견됨으써 사진제판이 고안되어, 마침내 67년에 독일의 알버트에 의해서 콜로타이프 인쇄로서 실용화되었다.
또, 망목 스크린과 감광제 등의 발명으로 사진판․원색판․그라비어 인쇄(1893)․오프셋 인쇄(1904)등의 인쇄방법이 계속 고안 되었다.
한국에 근대식 인쇄방법이 도입된 것은 1883년(고종 20) 정부가 인쇄기계와 납활자를 수입하고 박문국(博文局)을 설치한 것이 처음이다. 이어 84년부터 근대식 인쇄기계와 납활자를 사용하기 시작한 곳은 광인사인쇄공소(廣印社印刷公所)였는데, 최초의 인쇄시설은 수동식 활판기였다.
사진제판 시설이 처음으로 도입, 설치된 것은 1920년경이다. 한편, 근대에 이르러 출판물 생산의 증대와 신속성의 요구는 인쇄기계의 개량을 촉진하게 되었다. 1868년에 영국에서 발명된 두루마리용 활판윤전기는 계속 개량․연구되어 점차 정밀․고속화하였다. 대량의 인쇄를 할 경우에는 반드시 인쇄기의 판을 부착시킨 부분과 종이를 사이에 두고 위로부터 압력을 주는 부분이 원통형으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절대적인 필요 조건으로 되었다. 그 때문에 볼록판에서는 지형(紙型)이 발명되고, 지형에서 원통형 연판(鉛版)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평판의 경우에도 아연판에 제판해서 이것을 원통형으로 둥글게 말아 판을 만들며, 오목판에서도 구리 원통판을 부식해서 판을 만들어, 윤전기에 의해 대량 인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근래에 사진과학․전자공학․합성수지 공업의 발달로 인쇄는 계속 새로운 기술이 생겨나서, 입체사진인쇄․전자사진인쇄․화장판건축재인쇄․직물용날염인쇄와 비닐․폴리에틸렌에 복제하는 인쇄를 촉진하였다. 한편, 전자공학을 응용한 제판법이 발명되어 원색원고를 정밀하고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전자색분해기(電子色分解機)가 많이 이용되고 있다. 특히 이들 기계에 쓰이는 광원도 레이저광선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또, 중심도시에서 제판은 신문을 전송사진으로 먼 곳에서 보내어 제판하고 인쇄하는 팩시밀리에 의한 오프셋 인쇄도 개발되었으며, 잉크를 쓰지 않고 다수 복제하는 인쇄기와 정전기구(靜電機構)를 응용하여 순간적으로 판을 만들기도 하고, 또는 판을 만들지 않고 사진 원고에서 직접 인쇄물을 만드는 전자인쇄 등도 발명되었다. 이 밖에 인쇄배선(印刷配線)․자성(磁性) 녹음 시트의 인쇄, 자성 잉크에 의한 수표의 인쇄, 자동개찰 승차권, 형광 잉크에 의한 교통표지 인쇄 등 급속한 발전이 거듭되고 있다. 문자조판 분야에서도 납활자를 사용해서 수공적(手工的)인 방법으로 하던 문선(文選)․식자(植字) 등의 작업방식이 컴퓨터를 이용하는 사진식자(寫眞植字)방식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인쇄기 분야에서도 숙련기술자만이 하던 기계조작을 컴퓨터가 할 수 있도록 점차 개량되어 인쇄에 컴퓨터 시대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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